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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기억 조선에 돌아간 "전우"도 [정년시대 2016.4.하순호-일본]

名前 : 管理者  日付 : 16-04-22 21:55  HIT : 33914
1945.8.30오전, 일본의 모지역의 병사수십명은 아쯔기해군항공대경비의 임무가 해소되여 숙소에 돌아왔다.

하지만 놀란것은 출발시는 십수명이던 사관,하사관은 2등병사 한명만 남아있고 누구도 없었다. 그 병사가 발행하는 증명서로 우리는 각자 고향까지 무료로 렬차에 탈수 있는데, 병사의 이야기로는, 한 사람당 400엔의 수당은 그 곳에 있던 자들이 나누어가져 가서 아무것도 남아잇지 않다는 것이였다.

그러니까 자신이 열쇠를 관리하는 회계창고의 물건을 나누어 가지자고 했다.
창고에는 연어통졸임, 멸치통졸임, 빨간 콩밥통졸임, 새하얀 순모모포와 같은 물건이 산처럼 쌓여있었다.

나누는 작업을 하는 병사들속에 조선반도로 돌아 가는 병사가 십수명있다는 것을 알고, 그들에게는 빨간 콩밥통졸임 등을 보다 많이 나누어주었다.

분배품은 역시 창고에 있던 남경자루에 가득 채웠지만, [이것은 무거워 즈지역까지 운반할수 없다]고 모두가 말했다. 그리하여 동네에 유일한 마차운반점에 사정을 이야기하고 연어3상자(한 상자는 24개)를 쌓고, 날이 밝을 무렵에 첫 전차나 두번째 전차에 맞춰, 즈지역까지 날라오기로 했다.

자신[필자]은 근위병의 숙소에서 정리를 끝내고 오전 10시쯤에 즈지역에서 우에노로 출발했다. 전차가 오오후네역에 도착해서 보니 자신보다 수시간전에 출발한, 조선반도까지가는 병사들이 있었다.

[어-이, 잘 가게]하니 [하야가와상]하고 대답했다. 회계과에 속해 있었던 필자는 병사들과 별로 말을 나눈 적이 없었는데, 어제오늘 처음으로 말한 사이였지만 서로 친근감을 느끼게 하였다. 그로부터 수년후에 조선전쟁이 일어났다.

그들은 도대체 어떻게 되였을까? 전혀 소식을 모르고 전후 70년이 흘렀다. 필자 하여가와 히로지 86세

일제식민지시대에 일본군에 복무한 조선사람들이 다수 있었다.
해방후 북한에 돌아 간 이들의 대다수는 친일파, 조국과 민족의 반역자로 처형을 당했다.
4.3제주도 사건으로 일본으로 와서 1959년부터 시작된 [북송사업]으로 북한에 간 사람들중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처형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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