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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国日報)지상낙원 거짓 선전… 자이니치 북송은 명백한 인권 침해 日 변협에 인권구제 요청, 재일동포 2세 가와사키 에이코

名前 : 管理者  日付 : 16-07-26 11:18  HIT : 2102
조총련과 일본은 몰랐나, 17세 때 북송 뒤 "속았다" 느껴
유엔서 북한 인권 상황 폭로, 북송 피해자 구제 시민단체 운영

재일동포 북송사업으로 북한에 갔다가 탈출한 일본인 아내와 재일 조선인(자이니치) 12명이 지난달 15일 일본과 북한의 실태를 폭로하며 일본변호사협회(변협)에 인권구제를 요청했다.

이들은 1959~84년 북한과 일본의 꾀임에 넘어가 원하지 않는 북한행을 강요당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일본 변협은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도 ‘인도적 범죄’로 인정한 북송사업 과정의 인권 유린 실태를 조사해 일본 정부 등을 상대로 명예회복을 요구하는 소송을 준비 중이다. 이 문제는 북한의 일본인 납치 재조사와도 연관이 있어 북일관계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
유엔과 일본 변협의 인권구제 요청을 이끌어낸 주역인 재일동포 2세 가와사키 에이코(川崎?子ㆍ72) ‘모두 모이자’ 대표를 최근 만나 북송 사업 실태와 향후 대응 등을 들었다.

-인권구제를 신청한 배경은.
“북송사업은 조총련, 북일 적십자 등이 합작으로 펼친 사업이지만 어느 누구도 북한의 실상을 제대로 전달하지 않았다. 재일조선인들은 북한이 지상낙원이라는 선전에 속아 북한행 배에 몸을 실었다. 이런 사실은 이후 일본 정부나 조총련도 파악했지만 북송 사업을 멈추지 않았다. 명백한 인권 침해에 해당한다.”
-북송선을 탄 경위를 설명해달라.
“부모가 남한 출신이어서 북한과는 특별한 연고가 없었다. 학창 시절 공부는 잘했지만 고등학교에 진학할 형편이 되지 않자 아버지가 장학금을 주겠다는 조총련 간부의 말을 듣고 조총련계 고등학교에 진학시켰다. 이후 북송사업이 시작되자 아버지는 ‘북한에 가면 좀 더 나은 생활을 할 수 있을 것’이라며 나를 보냈다. 나도 북한 현실을 두 눈으로 직접 보고 판단하겠다고 생각해 혼자 북송선을 탔다. 열일곱 살 때였다.”
-북송선 분위기는 어땠나.
“1960년 니가타항에서 러시아가 마련한 선박을 타고 청진항으로 향했다. 배가 공해에 도착하자 북한에서 온 인솔자가 일본에서 가져온 음식물을 모두 바다에 버리라고 했다. 자본주의사회의 음식은 북한에 반입할 수 없다는 이유였다. 청진항에 도착하니 앞서 도착한 조총련 학교 출신 고교생들이 일본어로 ‘배에서 내려오지 말고 그대로 일본으로 돌아가라’고 외쳤다. 뭔가 잘못됐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이미 늦었다.”
-일본에 남은 가족들은 함께 오지 않았나.
“당초 1년 정도 살다가 남은 가족들도 북한에 건너 와 합류하기로 약속했다. 하지만 북한의 현실은 일본에서 들은 것과 너무 딴판이었다. 그래서 일본에 계신 부모님에게 ‘동생이 결혼 하면 만나자’는 편지를 보냈다. 동생은 초등학생이었으니 오지 말라는 이야기였다.”

-이런 사실을 일본과 조총련은 몰랐나.
“당시 북한에 온 학생이 모교인 조총련 학교에 ‘우물 안 개구리는 바로 나를 두고 하는 말’이라며 북한 실상을 낱낱이 폭로한 편지를 보냈다. 이 편지는 조총련 내부에서 큰 문제가 됐고 북한이 지상낙원이라는 선전이 거짓임이 드러났다. 하지만 조총련은 이런 사실을 숨기고 북송사업을 계속 했다.”
-북한 생활에 적응 못한 사람도 많았을 것 같다.
“일본에서 온 사람들은 출신 성분이 낮아 차별 대우를 받았다. 이를 견디지 못하고 자살한 사람을 본 적도 있다. 하지만 그는 죽으면서도 남아 있는 자식들이 피해 볼 것을 우려해 ‘이 나라의 제도 때문이 아니라 자식들에게 아무 것도 해줄 수 없는 엄마실격자라서 죽는다’고 유서를 썼다.”
-북한에서는 어떤 일을 했나.
“함흥시 화학공업대를 졸업해 기계공장에서 설계 엔지니어로 근무했다. 나름대로 북한 사회에서 인정받았고 직장에서 만난 남자와 결혼해 5명의 자녀를 두었다. 감시의 시선도 많았지만 생각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 참았다.”
-탈북을 결심한 이유는 뭔가.“한국이 1988년 서울올림픽을 열자 북한은 김정일 주도로 평양 통일대축전을 유치했는데, 이 때문에 북한 경제는 어려워지고 굶어 죽는 사람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김일성이 죽고 김정일 정권이 들어선 이후 주민들의 어려움이 심각해지고 아사자가 급증해 탈북을 결심했다. 2003년 3월 중국으로 간 뒤 이듬해 일본에 입국했다. 지금까지 3만명 정도의 북송사업 당사자나 가족들이 탈북해 이중 2만7,000여명은 남한에 살고 있고, 200여명만 일본에 정착했다.”
-일본에서 그간 활동은.
“북한에 남겨 둔 가족이 있어 한동안 실명을 드러내지 않고 북송사업 피해자 구제 활동을 해왔다. 2007년에는 ‘일본에서 북으로 돌아간 사람의 이야기’라는 책을 한석규라는 가명으로 출간했다. 국제인권단체 휴먼라이트워치 일본사무소의 도움으로 지난해 2월 유엔 본부에서 북한 인권상황을 폭로했다. 유엔인권이사회는 이를 토대로 북송사업의 인도적 문제점을 지적하는 보고서를 제출했다. 지금은 북송사업의 부당성과 책임 소재를 가리고 일본으로 귀국을 원하는 사람들을 돕는 시민단체 ‘모두 모이자’를 결성해 운영하고 있다.”
-향후 어떤 일을 할 예정인가.
“최근 북일 교섭이 진행되면서 북송 사업 당시 북한에 간 일본인 아내의 송환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이들의 일본 정착을 돕는 것이 중요한 일이 될 것이다. 당시 북한으로 건너간 재일조선인 중 귀국을 희망하는 사람은 모두 송환해야 한다.”
도쿄=한창만특파원 cmha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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