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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鮮日報(2015.12.15)

名前 : 管理者  日付 : 16-07-26 16:27  HIT : 4683
"낙원이라고 속여 56년前 동포 北送… 조총련 사죄하라"
도쿄=김수혜 특파원
2015.12.15 03:00 | 수정 : 2015.12.15 03:10
北서 탈출 70대, 항의 시위

1959년 12월 14일 일본 니가타(新瀉)항. 재일동포 975명이 설레는 얼굴로 소련 배 클리리온호(號)와 토보르스크호(號)에 올랐다. '조센징'이라고 차별받는 나라를 떠나 '지상 낙원'으로 가는 제1차 북송선이었다. 이듬해 4만9036명, 그 이듬해 2만2001명이 더 갔다. 25년간 총 9만3340명이 청진항에 내렸다.

그렇게 떠난 사람 중 한 명인 가와사키 에이코(川崎榮子·72)씨가 14일 도쿄 도심 조총련 본부 앞에서 "인간이라면 사죄하라"고 외쳤다. 굳게 닫힌 철문 밑으로 북송 동포 실태를 조사하라는 '인권구제신청서'를 밀어 넣었다.

"56년 전 당신들의 거짓말에 속아 첫 북송선이 떠났어요. 잘못을 인정하고, 북송(北送) 동포들이 자유롭게 오가게 해달라고 북한 당국에 요구하세요."

북송(北送) 재일동포 출신 탈북자 가와사키 에이코(왼쪽)씨가 14일 도쿄 도심 조총련 본부 앞에서 자신의 수기를 들어 보이며 “동포들을 속여 북한에 보낸 조총련은 사죄하라”고 주장하고 있다. /김수혜 특파원
가와사키씨는 1960년 17세 때 북송선에 탔다. 북한 남자와 결혼해 자식 넷을 낳고 살다가 남편과 사별한 뒤 환갑 때 양강도 회산을 떠나 중국 선양을 거쳐 교토로 돌아왔다. 일본에 살 땐 조선에서 왔다고, 북한에 살 땐 일본에서 왔다고 차별당했다. 차별에 한 맺힌 사람이 어째서 여생을 보낼 나라로 일본을 선택했을까.

일본은 탈북자 중 북송 동포와 그 자손만 한정적으로 받고 있다. 현재 일본 전역에 200명 정도 있다. 대부분 북한에 남은 가족들 걱정에 얼굴과 이름을 숨기고 산다. 가와사키씨도 10년간 그렇게 살다 일흔 살 때 마음을 바꿨다. 지난해 실명으로 유엔에서 증언하고, 북송 동포 탈북자를 모아 '모두 모이자'라는 시민단체도 만들었다. 가와사키씨도 자식 넷 중 딸 하나, 손주 하나만 빼고 나머지는 다 아직 북한에 있다.

"저는 제 자식들이 북한 어디 사는지 다 알고 있어요. 저 때문에 자식들이 잘못되면 자식들이랑 다시 연락이 닿을 때까지 더 시끄럽게 증언할 거예요. '내 자식 무사하다는 증거를 대라'고 북한 적십자사를 압박할 거예요."

20년 이상 탈북자 인권운동을 펼쳐온 오가와 하루히사(小川晴久·74) 도쿄대 명예교수가 함께 나왔다. 오가와 교수가 "나도 한때 북조선을 지지했던 사람"이라며 조총련 건물을 향해 "사죄하라"고 외쳤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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